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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건강

인생이 억울하다고 느껴질 때

by 오맘생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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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회사를 가건 누구와 일을 하건 성실함과 주인의식 하나는 인정을 받아왔다. 내가 생각해봐도 나는. 모든일에 책임감 하나로 힘든일도 자처해서 해내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선택받는 멋진 여자로 살고싶어 선택한 여러 일들과 과정이 나를 지독하게 아프게 했고 또 나를 성장시켰다.


그 첫번째 에피소드다. 처음 내가 선택한것은 책쓰기였다. 책쓰기를 배워 책을 냈다. 코치로로 활동했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갔다. 다 빚이었다. 동생돈까지 끌어다가 쓴 빚. 그렇게 투자비용 즈음으로 생각하고 수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책쓰는곳에 다 썼다. 내가 책써서 번돈. 책쓰기 가르쳐준곳에서 번돈. 일반직장인 사원 월급 두달치 정도다. 벌어도 수익쉐에가 되니 벌어도번것이 아니었다. 빚은 점점 더 늘어갔지만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곳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시대라면 인성 논란과 인신공격으로 타격을 받을 사건일 수 있지만 그당시에 그런 생각까지 닿지 않을 정도로 멘탈이 쎄개 나가있었으니까..아무것도 난 할 수 있는게 없구나로 나를 자책하며 결론지었었다.


그 다음 에피소드다. 한 개인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자신의 브랜딩 마케팅을 대행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집과의 거리도 있고 월급역시 맞지않아 고민하다가 시간을 자유롭게 탄력적으로 조정해주겠다는 말에 경단녀 육아맘 시기이던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뭘 하나 시작하면 앞뒤없이 전진하는 내 성향상 비즈니스 모델 수립과 전자책 수익화 그리고 커뮤니티 구축까지 유료광고 한푼안들이고 키워냈었다. 외부 전문가 강사 활동은 덤이었고 스카웃제의와 종이책 출간까지 이룬 성과였다. 이런 성과를 바라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정말 책임감하나로 일을 키워왔다.
좋은일이 있을땐 나쁜일도 같이 온다고 했던가?
나를 고용한 그가 스카웃제의를 받더니 이직을 한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이직을 하면서 덩달아 나도 함께 이직한다는 통보였다. 이 또한 받아들였다. 파트너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 가는 그 시기. 한달도 안됐을 때 일은 벌어졌다. 당장에 돈이 돌지 않으니 나를 고용한 고용주는 폭발적 감정표출이 허구헌날 이어졌다. 어느새 내 뒷담화도 이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이란 부적응. 미적응이 되어갔다. 피터지는 싸움이 벌어지던 그곳. 그곳을 뒤로한채 야밤도주하듯 내 고용주는 또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역시 함께...그리곤 얼마지나지 않아 지병이 있으시던 우리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고용주와 내 사이는 벌어질때로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아, 하기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고 일이고 그냥 다 집어던지고 "나안해!"를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지경이었다.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당장에 퇴사를 결심하고 고용주에게 퇴사의사를 밝혔다. 고용주는 울고불며 난리를쳤다. 회유를 하더니 윽박을 지르더니 내게 둔 혜택들이 권리가 되었다며 협박을 하다가 주말이 지나자 퇴사하라는 통보를 했다. 씁쓸했다. 때는 11월로..날씨는 춥고 온기없이 씁쓸한 손인사를 뒤로한채 그렇게 고용주와 인연은 끝이났다.


세번째 에피소드다. 얼마후 나는 새벽기상을 하며 비즈니스의 근본을 안내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다. 1년가량 지나자 이곳 수장에게 협업제안을 받았다. 고용주와 마찬가지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재미있게 일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수장과 함께 살을 붙여 빠르게 일을 진행시켜갔다. 하지만 수장과 함께 하면 할 수록 내가 설 자리는 줄어갔다. 수장은 매출을 마음먹은대로 올렸다. 그가 번 매출의 일부를 나는 활동비로 받았다. 그가 뭐든지 해봤다고..했었다고..말하는 말에 굳이 내가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일도 재미있고 함께하는 이들도 성장의 기쁨을 즐기고 있었기에 한동안 수장과 연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장과 일하진 않는다. 그 이유. 내가 수장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 이었다. 솔직하게 할말 하고 뒤에서욕하지 않는 진실함이 있다는 말을 씀으로써 나에게 온갖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을 퍼부었다. 그것이 여러번 반복되다보니 내가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된것 같았다. 어느날은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며 수장은 손을 때겠으니 알아서 해라라고 통보했다. 스스로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 나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협업이라곤 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는 누군가의 도구였던 것이다. 끝내 수장과의 인연은 종료됐고 내게 남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남은 것이라곤 번아웃 증후군이 남게됐고 기억이 순간순간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내가 스스로 박수칠만큼 최선을 다 했는데 결국 나에게 남는것은 아무것도 없이 빚뿐이란 생각에 억울함이 솟구쳤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나 풀까.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가 이 곳에 한자 한자 적으며 깨달았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기에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글을 쓰며 내나름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가 되어간다.

억울하지만 덜 억울하고
열받지만 덜 열받고
원망스럽지만 덜 원망하게 되고..

서서히 내가 치유되어가는 과정이 나 스스로도 느낀다.

모든일에 억울함은 분명 존재한다.
그 억울함은 풀려도 억울하고 안풀려도 억울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팩트를 팩트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A가 팩트라고 해도 사람은 자신이 느낀 감정이 팩트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느낀 그 감정. 거의 대부분은 추측에서 추궁으로 이어져 결국 자신이 느낀 그 감정이 맞았다며 그것이 팩트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A가 팩트인건 맞지만 결국 팩트는 사람의 감정이다.
상대방이 느낀 감정이 팩트이기에 내가 그것이 아니라고 애써 설명해봤자 억울함은 있기 마련이다.

인생이 억울하고 느낄때는 사람을 상대하며 억울함을 호소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 억울한 감정도 내가 느끼는 것이니 억울함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잘쓸 필요도없고 문맥이 맞든 틀리든. 내 억울함을 글로 표현하며 내려놓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오늘 내맘 생각
억울함은 결국 상대방을 이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더 억울하다.
져도 이긴것으로 의식화하자.
나는 강하고 상대도 강하지만 내가 져줌으로써 이긴것이다. 즉, 강한자가 더 강한자를 이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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