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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건강

상처받은 30대 어른 아이는...

by 오맘생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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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가 됐다.
내동생은 나와 연년생이다.
어릴때 나는 어렸지만 애늙은이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엄마아빠에게도 말한번 한적이 없는 사실이 있는데
내가 애늙은이가 된대에는 하루에도 수십번 부부싸움을 하는 엄마아빠를 보며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고일어나면 온갖 집안살림은 제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전자렌지며 가전이며 나뒹굴때가 많았다. 엄마는 멍이 든적도 많았고 몇일 집을 비운적도 가끔있었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밝게 자랄 수 있었을까. 그다지 밝은 아이는 되지 못했다. 자존감도 낮고 얼굴표정도 우울해보였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어릴때 내모습은 행복한적 한번 없었던 세상짐 다 짊어지고 사는 아이같았다. 그런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빠에 대한 원망도 컸었다. 무슨 일이건 엄마에게 욕설은 물론 화가나면 손부터 나가는 아빠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도 간혹 때리고 맞는 엄마아빠의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를때면 아빠가 밉고 원망스러울때도 있다. 사람이면 짐승보다 더 나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말을하고 생각이란걸 하니까. 짐승과 다른건 그거니까.
어느날은 아빠가 창고에서 농약을 들고오더니
엄마앞에 갔다놓고선 이거 마시고 죽자라고 했었다한다. 참..세상 어이가 없고 이해가 안가는 짐승만도 못한 아빠의 행동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때로 올랐었는데...
활활탈정도로 분노가 가득했었는데
정말 한순간 그 화가 사그라들었다.
진짜 갑자기 화가 나기보다
안쓰럽기 그지없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랬던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에대한 분노가
어느순간 안쓰러움으로 바뀌더니
아빠를 입체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한 인간 존재로 바라보게 됐다.
내 아빠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깊이있게 바라보게 되었고 한 사람으로서 포악해지게 된 생각회로를 펼처보게 됐다.
그전에는 내 어릴적 우울했던 가정환경이 아빠탓이고 아빠는 가정파탄자라 생각해왔는데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아빠를 한 사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의 언어를 이해했고, 아빠의 표현법을 알게됐다.
왜 화가났는지, 화가났을때 표현방식이 왜 거칠고 폭력적이게 되었을지 내면 깊이 들여다보면서
'아빠도 아빠에게 배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9남매중 6째 아들로 태어나 당시에 부모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자랐을까?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도전에 살아남기위해 먹을것을 쟁취해야하는 생존이 먼저였지 않았을까? 생존이 먼저인 시절에 누가 어렸던 아빠를 응원하고 화가났을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행동방식을 가르쳐주었을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을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을까?
이런생각이 내 머리속에 떠오른 그날..
나는 눈녹듯 분노가 빠르게 사그라들었었다.

아마도 결혼해서 부부가되고 남편과 지지고 볶고
아이를 낳아 키워보며, 시부모님을 부양하면서 보낸 시간과 과정속에서 깨달은바가 있었나보다.
내가 그간 나의 상처라고만 생각했던 아빠의 부정적 모습들이 내 가정을 꾸려가면서부터 어쩌면 내 내면을 성숙하게 해준것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결혼후 나는 결혼전보다 스트레스는 두배 세배가 되었지만 빠른시간 많은것을 보고 깨달았다.
일일이 나열하려면...쩝...뭐 그렇다...
어쨌든 내 가정이 있음으로써 아빠의 어릴적 가정환경을 상상해볼 수 있었고 또 내 어린적 가정환경 을 보며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고 변하지 않는다.
폭행을 당한 것 역시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차이였다. 폭력을 행사한것은 잘못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고 계속 같이 함께해온 엄마는 어떤마음으로 산것일까. 아빠가 좋은사람이란것을 알고있다. 표현할 줄 몰라서 그런것이라 한다. 엄마는 그렇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남편의 폭력을 못버티고 집을 나간 동네 친구 엄마도 몇됐다. 그럼에도 우리엄마는 그렇게 하질않았다. 받아들인것이다. 아빠의 그런모습또한..

하지만 나처럼 분노의대상을 객곽적으로 보는것이 힘든사람도 있다. 내동생이다. 내동생은 아빠에대한 분노가 여전히 크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있지만 나와는 또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어릴적 상처를 엎고 살지말라고 했다. 상처받은 마음은 호떡뒤집듯 한번에 치유가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릴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최근에도 아빠와 동생은 한 사건이 있었다. 아무렴 아빠지만 동생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화가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너도 아빠랑 똑같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네.
4살먹은 아이가 나아프니까 호~해줘 라는 것처럼
네 상처만 크고 네만 아픈사람처럼 얘기하지마.
아무런 노력도 없이 화나면 화내고
짜증나면 짜증내고.. 네가 아빠랑 다를바하나없네"라고말이다.

위로말을 건네고싶진 않았다.
내눈엔 아빠와 동생이 똑같아보였으니까.

동생에게 한마디 한후
몇일있다가 동생이 말했다.

아빠한테 미안한데 퉁명스럽게 된다고..

노력하라고 했다.
니가 아빠자식인것은 변하지않는다.
아빠가 너의 아빠인것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게 있다면 너의 생각이 유일하다고 말이다.
정말 그렇다.
상황은 사실이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변하면 변한다.
내가 변하면 된다.
내 생각이 변하면 되는 것이다.

내 동생은
상처받은 30대 어른 아이다.
나도 그랬던 아이었지만 지금은 그 상처에 매몰되있진 않다.
변하는 것은 오직 나 이니까.

상처를 받지 않으려해도 받게 되는게 상처다.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내가 일어서면 된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내동생.
일어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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